글리치와 관련해서

게임에서 글리치(Glitch)는 의도치 않은 프로그램 충돌로 인해 발생하는 오류로, 시스템이 예측되지 않은 방식으로 작동하는 순간적인 이상 현상을 의미한다. 글리치는 일시적이며 특정 조건에서만 발생하고, 재현이 어렵다는 특징을 가진다. 이는 시스템의 근본적인 결함이라기보다는 프로그램 실행 중 순간적인 불안정성에서 비롯된다. 그래픽 오류, 오브젝트 충돌 문제, 물리 엔진의 비정상적인 반응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글리치로 인해 게임 속 등장인물이 예상치 못한 행동을 보일 때, 그 모습은 종종 슬랩스틱 코미디처럼 우스꽝스럽게 보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언캐니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특히 공포 게임에서는 글리치를 일부러 연출하여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흐리는 장치로 활용한다. 가령, 귀신이 글리치로 인해 화면이 깨진 듯한 형상으로 나타난다면, 이는 마치 게임 세계 자체가 통제할 수 없는 오류를 일으킨 듯한 효과를 주어 더욱 불안감을 조성한다.

게임 플레이어에게 있어 이러한 현상은 어디까지나 인공적으로 설계된 가상 공간 내에서 발생하는 현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만약 현실이 매트릭스처럼 더 높은 차원의 시뮬레이션 세계라고 가정했을 때, 우리가 초자연적인 현상이라 불렀던 것들이 현실의 글리치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가 두려워했던 불가사의한 현상들이, 더 높은 차원에서 바라보면 단순한 오류에 불과할 수도 있다.

다중우주가 존재한다고 가정했을 때, 각 우주는 평행을 이루며 원래는 접점이 없어야 하지만, 어떤 순간적인 오류로 인해 서로 겹치는 순간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온라인 게임에서 동일한 맵이 여러 서버에 나뉘어 존재하는데, 서버 간 충돌이 일어나면 예상치 못한 오류들이 발생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우리 현실에서도 우주 간 간섭이나 중첩이 순간적으로 발생할 때 글리치가 나타나는 것일 수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초자연적 현상들은 단순히 공포의 감정으로 덮어버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공포를 극복하고 나면 다른 차원의 존재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미세한 포털이 될 수도 있다. 어쩌면 이러한 불균형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매트릭스 설계자가 인간의 시스템에 '공포'라는 반응을 입력해 둔 것일지도 모른다. 마치 영화 트루먼쇼에서 트루먼이 자신이 평생 전부라고 믿어온 거대한 세트장을 벗어나려 할 때마다, 강한 트라우마를 자극하거나 재난을 조작하여 트루먼을 다시 세트장 내부로 가두려 했던 것처럼.

그렇다면 지금까지 공포의 대상으로 치부해왔던 귀신, 도깨비, 폴터가이스트 같은 존재들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다른 차원의 존재들이 남긴 흔적일 수도 있다. 현실 속 글리치는 우리가 접근할 수 없는 차원의 틈을 보여주는 작은 균열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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