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과 관련해서
어릴 적, 나에게 죽음이라는 개념을 처음 심어준 존재다. 잠들기 전, 엄마는 공룡에 관한 책을 읽어주곤 했다. 내용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결국 운석이 충돌해 공룡들이 멸종했다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어린 내가 공룡을 좋아했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의 나는 공룡이 죽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엄마도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 “그럼 엄마도 죽어?” 하고 울었고, 엄마는 나를 안아주며 “모두 언젠가는 죽지만, 오랫동안 곁에 있을게.” 하고 달래주던 기억이 있다.
픽사의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에서 주인공 라일리의 어린 시절 상상 친구였던 빙봉이 라일리가 청소년이 된 후에도 그녀의 무의식 어딘가에서 라일리를 응원하고 있었던 것처럼, 내 안에도 생물학적이거나 고고학적인 존재로서의 공룡이 아닌 초록빛 피부의 파충류스러운 무언가가 오래 잠재되어있던 의식세계 어디선가에서 엄마와 나눈 첫 죽음에 관련된 대화, 추억을 보관해주고 있었다.
언젠가 아크: 서바이벌 이볼브드(ARK: Survival Evolved)라는 게임을 진지하게 한 적이 있다. 원시인지 미래인지 알 수 없는 배경 속에서, 플레이어는 원시인으로 시작해 공룡을 사냥하고 길들이며 기술을 터득해나가며 생존해 나간다.
내가 처음으로 길들인 공룡은 어두운 초록빛을 띠는 프테라노돈이었다. 어디를 가든 그 프테라노돈을 타고 이동하면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무거운 짐을 옮길 때도, 깊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도, 늘 나를 돕던 친구였다. 때때로 프테라노돈이 들어갈 수 없는 장소에 다녀와야 할 때면, 나는 녀석을 안전한 곳에 내려놓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서둘러 돌아오곤 했다.
그렇게 긴 시간 프테라노돈을 비롯한 다양한 공룡들과 어울리며 수렵채집을 하며 나만의 작은 생태계를 구축했다. 하지만 어느 날, 내가 로그아웃한 사이 한 중국인 고수 유저가 내 거점을 습격했다. 내가 쌓아온 것들은 잔해만 남았고, 모든 공룡은 살해당했다.
허탈한 마음으로 게임 속 세상을 떠돌다 나의 프테라노돈과 똑같은 공룡을 마주쳤다. 알고리즘에 의해 단순히 리스폰된 공룡이었다. 나와의 상호작용도, 기억도 리셋된 채 같은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공룡. 하지만 허무함보다는 ‘이번 생은 행복하길...’ 하는 감정이 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더 이상 게임을 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관심 없다고 생각했던 매끈한 초록빛 피부의 존재가 무의식의 가장 깊은 곳에서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어떤 계기로 인해 다시 의식 위로 올라오고, 과거의 기억과 감정들을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
현재 내가 사랑하고 있다면, 먼 미래의 나는 이 사랑을 초월적인 방식으로 다시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순간, 사랑을 매개하는 또 다른 존재가 나타날 것이다. 아마 지금은 알아볼 수 없지만, 아주 가까운 곳 어딘가에서 유령처럼 떠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우연한 계기로 마주하게 될 친구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