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관련해서

“빛의 단면”

버드아이뷰로 내려다본 도시의 야경을 본 적이 있는가?
도시는 거대한 빛의 집합체다. 수많은 건물과 도로,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신호등, 그리고 끝없이 반짝이는 LED 광고판까지... 차를 타고 퇴근하는 사람들, 늦은 밤까지 사무실 불을 밝히는 이들, 여행을 떠나기 위해 공항으로 향하는 누군가. 그들에게는 각자의 사연과 맥락이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부모이자 자식이고, 연인이자 친구일 것이다. 하지만 높은 곳에서 바라본 서울의 불빛들은 그러한 개별적 서사를 모두 덮어버린다. 수많은 움직임과 에너지가 응축된 도시조차도, 멀리서 보면 그저 하나의 평면적인 빛의 장으로 보일 뿐이다.

그날은 안개가 낀 날이었다. 나는 우연히 건물 위의 LED 광고판을 측면에서 바라보았다. 정면에서 볼 때는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맥이 존재한다. 그것이 글자든, 이미지든, 영상이든 우리는 이를 ‘정보’로 인식한다. 그러나 옆에서 보니 그 정보는 사라지고, 오직 흩어진 빛의 입자들만 남아 있었다. 미세한 물방울들이 빛을 산란시키면서, 본래의 메시지는 사라지고 흐릿한 색의 조각들이 떠다니는 듯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나는 이 현상을 소통과 정보 전달의 과정에 대입해 보았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해하는 ‘정보’는 빛이 질서를 갖춘 상태에서 명확한 언어로 전달될 때 성립한다. 하지만 그것이 다른 각도에서 조우하면, 즉 비정형적인 방식으로 표현되거나 예상치 못한 경로를 거칠 때, 정보는 조각나고 분해된 채 떠다닌다. 그것은 더 이상 우리가 해독할 수 있는 언어가 아니라, 하나의 추상적인 패턴으로 변한다. 하지만 그 흐릿한 빛의 조각들이 전하는 감각은 의외로 평온하고, 단조로우며, 심지어 아름답게 느껴졌다.

모든 정보가 반드시 질서를 갖춰야 할까. 높은 곳에서 바라본 서울의 야경이 그 자체로 하나의 평면적인 풍경이 되는 것처럼, 분해된 빛의 입자들도 나름의 형태와 감각을 만들어낸다. 언어로 해독되지 않는 정보도 그 자체로 존재의 한 형태이며, 때로는 그 무질서 속에서 새로운 의미가 창조될 수도 있다.

결국,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혼란스러운 화면도, 원래 그 정보를 구성하던 빛이 질서를 잃을 때 비로소 아름다워질 수 있다.



“인공조명”

밤이 주는 편안함이 있다.

낮에는 불필요한 정보들이 무차별적으로, 때로는 폭력적으로 밀려든다. 특히 색이 그렇다. 내가 골드스미스 대학에 재학하던 시절, 이론수업 튜터였던 데이비드 바첼러 교수가 저술한 크로모포비아(Chromophobia)가 떠오른다. 그는 색이 동양적, 여성적, 유아적, 저속하거나 병적인 이물질로 여겨지면서 색 자체에 대한 혐오가 형성된다고 설명한다. 오랜 시간 무채색이 가득한 런던에서 10년 남짓한 시간을 지내며, 문명 사대주의에 알게모르게 빠져있던 나는 팬데믹과 비자 만료로 인해 다양한 색이 난무하는 한국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리고 남성이라는 나의 정체성까지 더해지면서, 그의 이론이 나를 겨냥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더 와 닿았다.

이런 저런 이유로, 나는 여전히 밤이 좋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밤이 되면 시각적 환경을 어느 정도 컨트롤할 수 있게 된다. 밤은 일종의 샌드박스 같은 공간이 된다.

건축가 유현준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 셜록현준에서 이를 건축적으로 해석한 바 있다.

낮에는 라이팅을 우리가 컨트롤을 못해요. 햇빛에 의해서 되는 거예요.

그 얘기는 뭐냐면, 여기 앉아 있는 사람이나, 저쪽에 단상에 서 있는 사람이나 똑같이 햇빛을 받는 거예요.

그림자를 똑같이 받아, 평등한 사회인 거예요.

그래서 서양 미술에서 볼 때 되게 중요한 사건 중의 하나가 그림에 그림자가 들어갔느냐 안 들어갔느냐예요.

르네상스 때 처음으로 그림자를 그리거든요? 그 얘긴 뭐냐하면은, 인간의 평등함, 인간의 유한함. 이런 것들을 보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 전에는 중세시대 때 그림을 그릴 때는 항상 하나님 중심이고 이렇게 되면 그림자가 없어요. 그래서 평평한 그림이었다면, 그림자를 넣음으로 인해서 이 사람의 존재를 유한하게 하는데, 문제는 낮에는 독재자와 거기에 모인 사람이 똑같은 햇빛을 받는단 말이에요. 근데 밤이 되면 조명을 바꿀 수가 있잖아요 인공조명으로. 저 사람한테만 서치라이트를 딱 때릴 수가 있고, 서치라이트로 기둥을 100개씩 몇백 미터짜리 높이의 건물을 만들 수 있고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그게 독재자를 부각시키려면 밤에 해야 하는 거예요.


경제적으로 밤은 효율적이다. 낮에는 정보전달의 형태가 3차원 형상까지 고려되어야 하지만, 밤에는 전달할 정보의 형태를 3차원까지 고려할 필요는 없다. 2차원으로도 충분하고, 더 나아가 1차원만으로도 가능하다.
ⓒ 2025 Geunbae 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