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와 관련해서
“우주는 관계이고
관계는 사랑이야.”
— 양승모
“Ο”, “∞”, “Ω”, “”
우주는 팽창하고, 유한한 리소스를 갖고 있다. 엔트로피는 지구, 태양계, 은하, 그리고 상상할 수 없는 범위까지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며, 철저한 물리 법칙 속에서 시간의 흐름을 따른다. 우주를 하나의 고립계(isolated system)로 본다면, 언젠가는 에너지의 이동이 끝나고, 마치 수명이 다한 전구처럼 팽창을 멈춘 우주는 극한의 엔트로피 상태에 도달한 뒤 조용히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모든 것이 멈추고,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시간조차 정지한 거대한 암흑.
우주의 팽창이 끝나고 인플레이션이 멈춘 순간, 열평형이 찾아오면 무한하던 공간은 의미를 잃고, 결국 0이 된다. 무한대가 순식간에 점이 되는 순간. 그리고 그 지점에서 우주의 운명에 대한 가설들은 갈린다. 다시 빅뱅이 시작되어 새로운 우주가 탄생한다는 설, 아니면 우주가 수축해 되돌아간다는 설. 나는 후자에 가까운 생각을 한다. 우주가 끝에 다다르면, 그것은 곧 시작으로 되돌아가는 것이고, 시간 역시 역행한다. 거꾸로 흐르는 우주 속 존재들은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반대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애초에 그곳에서는 그 방향이 정방향일 것이다. 결국 빅뱅에 도달하고, 다시 같은 우주를 반복하며 무한히 순환하는 세계. 철학자들이 말한 영원회귀,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가 물리적 차원에서 그대로 작동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탄생과 죽음의 구분은 무엇일까. 지금까지 알고 있던 죽음이 거꾸로 우주에서는 탄생이고, 지금까지 알고 있던 탄생이 거꾸로 우주에서는 소멸이라면, 결국 둘은 같은 지점에서 만난다. 예수가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모든 것이 결국 하나로 수렴하는 순간이 있다. 0의 순간. 나와 타자의 경계도, 모든 대립도 사라지는 지점. '너'가 없이는 '나'도 존재할 수 없듯이, 개별적인 존재의 의미는 그 지점에서 무너진다.
죽음은 의식이 사라지는 순간이며, 거꾸로 우주에서는 그 순간이 곧 탄생이 된다. 거꾸로 세계에서의 죽음이 다시 빅뱅을 거쳐 이 우주를 만들고, 그 과정이 무한히 반복된다. 그리고 죽음을 통해 열평형이 올 때까지의 시간, 0에서 다시 거꾸로 우주에서 내가 죽는 시점까지의 엄청나게 긴 시간을 nothing이라는 상태로 스킵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죽음은 끝이 아니라 단순한 공백이다, 어쩌면 공백이라고 칭할 수 조차 없을만큼 우주가 다시 나를 필요로 할 때까지의 찰나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순환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과, 이 수레바퀴에서 벗어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해탈은 단순히 죽음 이후에 nothing 상태로 넘어가는 것과는 다르다. 해탈이란 이 무한히 수축하고 팽창을 반복하는 우주 속에서, 그 수레바퀴를 벗어나는 것이다. 니체는 영원히 반복되는 삶 속에서도 인간이 충분한 광기를 통해 그것을 깨부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힘을 가진 자가 초인(Übermensch)이고, 불교에서는 이를 해탈이라 부른다. 결국, 이 무한한 반복에서 벗어나려면, 단순히 nothing 상태를 거치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차원을 바꾸어야 한다.
이 이야기를 나눈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는 3차원의 이해로 우주를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라고. 단순히 4차원이 아니라, 그 이상의 차원을 이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해탈이 가능하다고. 3차원에 갇혀 있는 한, 우주는 무한히 반복되는 수레바퀴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더 높은 차원에서 본다면, 그것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전혀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마치 “플랫랜더”(Flatlander)처럼, 2차원 세계에 사는 플랫랜더들은 3차원의 물체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3차원에서 봤을 때의 완전한 구가, 플랫랜더들에게는 처음에는 작은 점으로 나타나 점점 커지는 원이 어느순간 다시 작아지며 사라지는 것으로만 인식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3차원의 시점에서 우주의 거대한 순환을 바라볼 때는 그것이 단순한 반복처럼 보일 뿐이지만, 더 높은 차원에서 보면 전혀 다른 구조를 가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도, 이 0의 순간을 현재 시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해탈이란 단순히 반복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에도 이 패턴을 초월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지금 이 순간에도 0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단순한 연속성에서 벗어나 모든 시간과 존재를 하나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우주의 순환을 경험하면서도 그 굴레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길이 존재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초월이 아닐까.
결국, 우주의 순환 속에서 다시 0의 순간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순간, 모든 만물이 하나가 된다. 존재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로 흘러갈 뿐이다. 탄생과 죽음, 시작과 끝, 모든 것은 결국 하나의 흐름 속에서 이어지고 있으며, 다만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이론적으로 아는 것을 진리라 믿고 흉내낼 수는 있다. 하지만 가짜 깨달음을 깨달음이라 알고 싶지는 않다. 속세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아직 어렵다. 당장 중요한 것들이 많고, 현실에서 느끼는 감정과 관계들은 여전히 삶에서 크다. 인과관계, 작용 반작용의 관성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이번 생은 그냥 플랫랜더로 살아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