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관련해서
“윤동주의 자화상을 읽고, ‘시인의 우물’”
사람은 고여 있는 웅덩이에서 성장하지 않는다. 성장은 ‘정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밀려드는 새로운 것들의 간섭 속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결국, 그 모든 연결을 끊고 혼자가 되는 순간이 온다. 아군이든 적군이든, 나를 형성했던 모든 관계들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게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어머니일지라도, 더 나아가 내 자신일지라도. 그래야만 제대로 자랄 수 있다.
봄이 지나고 가을이 오듯, 조력자들은 제때가 되면 내 곁에서 하나둘씩 떨어져 나간다. 낙엽처럼. 독고다이. 결국, 인생은 혼자 살아가는 거라더라. 모두가 떠나고 나서야 깨닫는다. 나는 마치 낙원에서 쫓겨나 자연에 버려진 아담과 이브 같다. 나뭇잎을 주워 모아 서둘러 가면을 만든다. 진짜 내 모습은 도저히 그대로 내놓을 수 없을 만큼 못나 보인다. 쑥스럽게도.
그렇게 나는 스스로를 이방인이라 부른다. 나를 감추기 위해 만든 가면들은 점점 커지고, 이제는 내 본모습이 어디 있는지도 모를 정도다. 최고가 되고 싶은 욕심에 정작 내가 나 자신이기를 싫어하기 시작한다. 주객이 전도되고, 이질감이 특이점처럼 찾아오는데, 이상하게도 그게 편하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럴 운명이었던 것처럼.
그런데 이게 정말 행복한 삶일까. 이것이 진정한 사랑일까. 어디를 둘러봐도 긍정적인 건 하나도 없다. 가면을 벗어야 한다. 이 춥고 축축하고 궁상맞은 길을 끝까지 걸어야만 빛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언젠가 그 빛이 나를 완전히 감쌀 때,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면, 어둠 속에서 몰래 나를 응원하던 조력자들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것을 견뎌낸 나를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