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턴과 관련해서
“아포페니아”
넷플릭스 시리즈 퀸스 갬빗(The Queen’s Gambit)을 보며 한 장면이 내 사고방식과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고아원에서 체스를 배우게 된 베스 하먼은 체스판 위에서만큼은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체스판은 단 64칸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세계예요. 그 안에서는 안전하다고 느껴져요. 내가 주도하고 통제할 수 있으니까요. 예측도 가능하고요. 설령 다친다고 해도, 그건 제 탓이죠.”
베스 하먼에게 체스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다. 현실은 무질서하고 예측할 수 없지만, 체스판 위에서는 명확한 규칙이 작동한다. 체스는 혼란스러운 세계 속에서 유일하게 질서를 가질 수 있는 공간이다.
시리즈에서는 베스 하먼의 이러한 사고방식을 아포페니아(Apophenia)로 설명한다.
아포페니아란 무관한 정보 속에서 의미와 패턴을 찾아내는 심리적 경향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으려는 본능적인 습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이 과학적 발견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비합리적인 신념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아포페니아를 경험하는 사람들은 의미 없는 현상에서도 일정한 패턴을 발견하고, 보통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연결성을 찾아낸다. 이는 창의성과 정신적 불안정성이 교차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중력의 원리를 발견한 것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구름과 물결에서 형상을 찾아내 그림으로 남긴 것도, 칼 융이 무의식 속의 패턴을 탐구하며 ‘집단 무의식’ 개념을 발전시킨 것도 결국은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이들은 질서를 발견하려는 강한 집착을 통해 새로운 개념을 창조해냈다. 나는 이런 사람들이 남긴 흔적에서 큰 영감을 받으며, 그들의 시선이 나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세상이 영화 매트릭스처럼, 현실의 무질서 속에서도 어떠한 패턴과 숨겨진 규칙을 갖고 있다고 믿고 그것을 찾아내려 한다. 과학, 수학, 신, 종교, 심지어 유사과학과 신비주의적인 개념까지 동원해 나만의 체계를 구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찾은 규칙이 반드시 기존의 학문적 패러다임 안에서 검증될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어쩌면 그것은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본능적인 시도일지도 모른다. 베스 하먼이 체스판 위에서만큼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처럼, 나 역시 스스로 정립한 세계관 속에서 질서를 찾고 안정감을 느낀다.
내가 세계관을 구축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죽음을 넘어서는 방식으로 존재를 연속시키기 위함이다. 보통 죽음이란 자신의 이전과 이후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하지만 내가 나만의 세계관을 구축한다면, 죽음 이후에도 존재할 수 있는 틀을 만들 수 있다.
즉, 죽음을 하나의 절대적인 단절이 아니라, 또 다른 방식으로 연결될 수 있는 과정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나는 이 체계를 통해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과 다시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찾고 있다.
예를 들어, 이렇게 구축한 세계관 속에서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다시 만날 수 있다. 현실의 법칙 안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내가 만든 체계 안에서는 그것이 가능해진다. 나는 세상의 패턴을 찾고, 그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정리하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존재의 의미를 확장하고자 한다.
누군가는 이것이 비합리적인 신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SF 영화에서도 이런 상상을 하고, 일론 머스크는 화성에 가고자 하는 욕망 하나로 엄청난 기술 발전에 투자하지 않았던가? 검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게는 입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간절한 바람을 표현하는 방식이다.